“제방 무너졌다” 보고받고도… 행복청, 30분 골든타임 허비했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의 원인 중 하나인 ‘임시 제방’ 공사를 관할했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침수 30분 전에 “제방이 무너졌다”는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행복청이 ‘제방 붕괴’ 보고를 받고 30분 뒤 미호강물은 궁평2지하차도를 덮쳤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5일 오전 8시 10분 미호강 임시 제방 보수 작업을 감독하던 감리단장 A씨는 행복청 담당 직원에게 “제방이 붕괴됐다”는 취지의 전화 보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그에 앞서 두 차례 112에 “제방 위로 물이 넘칠 것 같다” “궁평지하차도를 통제해야 한다”고 신고했다.
A씨가 112 신고 사실과 함께 제방 붕괴 소식을 전하자 행복청 담당 직원은 상급자에게도 이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행복청은 당시 대응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보고 내용이 행복청의 더 윗선으로 전파됐는지는 불분명하다. A씨는 담당 직원에게 제방 붕괴를 보고한 뒤 작업 중이던 인부들과 함께 현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제방을 넘은 미호강물이 궁평2지하차도에 도착한 시각은 이날 오전 8시 40분이었다. 지하차도를 통제할 시간이 30분 있었지만, 무대응으로 허비해 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찰에 나선 국무조정실은 A씨 보고 이후 행복청의 대응 과정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행복청이 만든 임시 제방의 적절성도 논란이다. 행복청은 미호천교 확장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2021년 11월 기존 제방의 일부를 철거했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에 ‘임시 제방’을 설치했다가 다시 철거해왔다고 한다. 행복청이 사고 1주 전 설치한 임시 제방이 기존 제방보다 낮고 허술한 탓에 무너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행복청이 이번에 지은 임시 제방은 29.7m 높이다. 기존 제방인 31.3m보다 1.6m 낮아졌다. 인근 주민들은 “흙만 쌓아 올린 둑인 데다가, 공사 차량들이 오가며 흙이 유실돼 불안해 보였다”고 했다. 행복청 관계자는 “임시 제방은 전보다 낮아졌다고는 해도 계획홍수위인 28.78m보다 높게 축조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18년 미호천 하천기본계획에 따르면 미호천교의 계획홍수위는 29.02m이고, 관련 규칙에 따라 1.5m 여유를 둬야 한다. 최소 30.52m는 돼야 했던 셈이다. 이상래 행복청장은 사고 한 달 전인 지난달 13일 우기를 대비한다며 이 공사 구간을 찾아 현장 안전 실태와 취약 시설 관리 현황을 점검했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대책은 없었다.
이번 사고와 관련된 여러 기관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청주시는 흥덕구, 경찰, 소방, 금강홍수통제소로부터 침수 위험 등을 전해 받고도 이를 충북도에 전달하지 않았고 자체 대응도 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인 15일 오전 6시 29분쯤 행복청은 미호천교 확장 공사 현장에서 제방 작업을 하던 감리단장 A씨에게 제방이 무너질 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청주시에 알렸다. “주민 대피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주시는 사고 발생 5분 전인 오전 8시 35분이 돼서야 ‘미호천교 인근에 저지대 침수 위험이 있다’는 재난문자를 보냈다.
오전 6시 34분쯤 금강홍수통제소 역시 ‘미호천교가 심각 단계에 도달했으니 지자체 매뉴얼대로 통제해 달라’고 흥덕구에 통보했고 흥덕구는 이를 청주시에 두 차례 전달했다. 하지만 청주시는 이 내용을 도로 통제 주체인 충북도에 알리지 않았다. 청주시 관계자는 “구청으로부터 홍수 위험 사실을 통보받아 관련 부서와 상의했으나 미호강 인근이 논밭이어서 주민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청주시는 소방과 경찰이 위험을 알렸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충북도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도로 통제 권한이 있는 기관은 충북 도로관리사업소이기 때문이다. 충북도 역시 관련 기관들로부터 수차례 홍수 위험 등을 전달받았지만,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다. CCTV를 통해 지하차도 상황을 보고 있다가 사고 이후 현장으로 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북도 관계자는 “도(道) 매뉴얼에는 지하차도 중앙이 50㎝가 잠겨야 도로를 통제하게 돼 있다”고 했다. 충북도는 행복청이 임시 제방을 제대로 쌓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의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은 사고 전 ‘궁평지하차도 긴급 통제’를 요청하는 112 신고를 받고 궁평2지하차도가 아닌 궁평1지하차도로 출동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지 20분 뒤인 오전 9시 1분이다. 경찰에는 사고 관련 신고도 10여 차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