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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지붕에 나타난 '물건이 아닌 동물들'... 동물단체가 레이저 쏜 이유

제작 한국일보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는 29일 새벽 국회의사당 지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민법 일부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빔프로젝션 퍼포먼스를 벌였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 제공

29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지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동물∙환경단체 20개로 구성된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일부개정안 연내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빔프로젝션 퍼포먼스의 일환이었다. 지붕에는 '물건이 아닌 동물들', '지금 당장 민법 개정하라', '우리는 모두 지각 있는 생명' 등의 메시지와 동물 이미지가 투사됐다.

연대가 이 같은 퍼포먼스에 나서게 된 배경은 2021년 10월 동물의 비물건화 규정을 담은 민법 일부개정안이 정부 입법으로 발의됐지만 2년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계류 중인 데 있다. 연대 측에 따르면 정부 발의안과 함께 국회에 발의된 동물의 비물건화 민법 개정안은 5건에 달한다.

민법 일부개정안 통과의 걸림돌에는 법원행정처의 의견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연대 측의 설명이다. 법원행정처는 "동물이 사법상 어떤 권리·지위를 지니는지를 구체적으로 규율하지 않아 법적 혼란과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고 자칫 영업 목적으로 사육되고 있는 가축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재산범죄 성립에도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신중검토' 의견을 낸 바 있다.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장이 29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민법개정안 토론회에서 민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 제공

이에 대해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장은 "발의안에는 이미 '동물에 대해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라는 단서 조항을 담고 있다"며 "법원행정처가 우려하는 상황이 즉각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물에게 비물건의 지위가 필요한 특별한 규정은 향후 추가적인 법 개정 과정을 통해 정리해 나가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는 이미 법에 동물을 물건이 아닌 존재로 규정하는 추세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조항을 민법에 두고 있으며,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스페인 등은 동물을 '감응력 있고 생물학적 요구가 있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지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글씨가 투사돼 있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 제공

연대 측은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학대의 낮은 처벌 문제, 동물이 재산분할 및 채무변제의 수단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전시, 실험, 축산 등 산업에서 이용되는 동물의 권리를 신장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대 측은 이날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는 민법 개정의 법적 의미와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토론에 참여한 참석자들은 민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며 민법 일부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들은 동물과 관련한 법과 판례가 불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최정호 서울대 연구교수는 "민법에서는 동물을 물건으로 보고, 동물보호법에서는 생명체로 보고 있어 법과 법의 해석인 판례도 불일치하고 있다"며 "이러한 현행 규정의 모순과 부조화는 민법 개정안의 시행으로 법의 체계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도 "동물 의료사고가 나거나 개물림 사고가 났을 때 교환가치만 인정하지 않고, 치료비나 장례비, 위자료 등을 인정해주고 있다는 건 이미 동물을 물건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법과 다른 법과의 불일치, 법 규정과 판례 사이의 불일치를 수정하기 위해서라도 민법 일부개정안은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