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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임금 올해 1조1400억, 작년보다 30% 늘었다

제작 조선일보

건설 일용직 A(68)씨 등 20명은 작년 6~12월 서울의 아파트 공사장에서 하청 업체 소속으로 일했다. 그런데 1억원이 넘는 임금을 아직까지도 못 받았다. 원청 업체와 하청 업체가 공사 기간 연장을 놓고 갈등하면서 일용직 임금을 서로 떠넘겼기 때문이다.

근로자 임금 체불이 올 들어 늘고 있다.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에 신고한 임금 체불액은 올해 1~8월 1조1411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 늘어났다. 올해 피해 신고자만 18만명에 이른다. 임금 체불은 2019년 1조7217억원에서 지난해 1조3472억원으로 줄었다가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정부는 작년부터 건설업 경기가 나빠진 데서 크게 영향받았다고 본다. 전체 체불액 중 건설업 비율이 2021년 19.4%에서 올해 상반기 23.9%로 증가했다.

문제는 임금 체불 피해자 대다수가 중소기업 등의 비정규직이거나 저소득 근로자라는 점이다. 고물가·고금리 속에서 받아야 할 월급마저 밀려 “당장 생활이 어렵다”는 것이다. 체불 피해자 중에는 정부에 신고도 못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고했다가 당장 권고 사직을 당하거나 체불 임금 규모를 놓고 회사와 다투는 과정에서 받을 돈이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규모 부동산 개발 회사에 다니는 B(35)씨는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임금 1500만여 원을 받지 못했다. 부모 생계까지 책임지며 아르바이트와 마이너스 통장, 신용카드로 버티고 있다. 그는 “회사가 월급에서 기본급은 줄이고, 성과급 비율을 크게 늘렸다”며 “신고하면 회사는 나가라고 한 뒤 기본급만 주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건설 업체 종사자 C씨는 “2년 치 월급이 밀렸는데 사장한테 체불 얘기를 꺼내면 ‘월급 안 준다. 이런 식으로 일하느냐’며 트집 잡고 면박을 준다”고 했다.

의류 업체 근로자 D(66)씨는 고의적 체불로 고통 받는다. 한 업체에서 10년쯤 일하다 남편 병수발을 하려고 최근 퇴사했는데 회사는 ‘1년 이상 일한 적이 없으니 퇴직금은 없다’고 했다. 그동안 회사는 1년 월급 중 9~10개월은 계좌로 주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1년 미만 근로자는 퇴직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제도를 악용하려고 1년 이상 근로 기록에 미리 손을 쓴 것이다. 최근 전북 지역 제조 업체에선 5억원대 임금 체불 사건이 있었는데, 직원 14명 중 6명이 외국인 근로자였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임금 체불은 노동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반사회적 범죄”라는 대국민 담화문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고용부는 이달 말까지 임금 체불 문제를 전국적으로 조사, 단속한다.